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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인생 첫 하프 마라톤

by 동자꽃-김돌 2026. 4. 3.

2026년 3월 29일 오전 10:00 출발, 2시간 16분 13초 후 도착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 출발선에 서면 두근 두근 거렸다. 화약총 소리가 '탕'하고 들리면 죽어라 달렸다. 응원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쭉 치고 나가는 친구를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한 번도 1등을 해본적이 없다. 운동회 달리기에서 3등안에 들면 공책을 상으로 받았고, 손등에 도장을 찍어줬다. 1등은 아니어도 운동회때 달리기는 항상 기다려지고 재미가 있었다. 

살면서 대학에 입학하고 데모(Demo)하다가 도망가는 달리기 말고는 달일 일도 없고 달리는 것 자체를 잊고 살았다. 

2025년 8월 24일 달리기 시작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가 주도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생겼다. '여순사건진상조사보고서 작성 기획단' 순천 방문할 때 기자회견(https://www.nocutnews.co.kr/news/6387953)을 열었는데 검찰이 집시법위반으로 나를 기소해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무작정 뭐라도 해야 되는 상황이 생겼다. "한 번 뛰어 볼까?" 2025년 8월 24일 저녁 9시에 그냥 달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달린 거리가 4Km 30분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27일에는 6Km, 28에는 7Km를 뛰었다. 밤마다 뛰었다. 달리기 마일리지는 계속 쌓여갔다.

2025년 10월부터는 월 100km 이상을 뛰었다. 뛰고 나면 땀이 나서 좋았고, 심박수가 170까지 올라 신기했다. 조금씩 거리가 늘어나서 즐거웠고, 동천을 뛰는 분들과 마주치면 동지(?)를 만난 것 같았다. 

2025년 11월은 달리기가 주춤했다. 채열이 형 때문이다. 

11월 9일 새벽에 장채열(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형이 향년 62세로 별세했다. 두 주전에 병상에 누운 형을 보고 왔다. 막막했다.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온 후부터 나는 울면서 장례를 준비해왔다. 나는 순천YMCA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시민운동 과정은 온통 채열이 형과 함께 했다. 조례저수지 호수공원화, 순천화상경마장반대운동, 주민자치와 마을 공동체 운동까지 함께 상의했고, 마음이 맞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는 형이 있었고, 형은 허드레 일을 시킬 든든한 후배가 있었다. 37살, 시의원 출마를 권유한 것도 형이였다. 시민운동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날카로워졌다. 형은 나에게 "대학때 싱그럽고 재미있던 석이 모습을 잃지 말라"고 했다. 내가 만난 운동권 중에서 보이는 대로 믿어주고, 여유가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의 죽음은 내가 죽은 것과 같았다. 갑자기 벼량 끝에 떨어진 것 같았다. 밤마다 울면서 뛰었다. 뛰면서 울었다. 장채열 선배는 순천 지역의  사회적 자본이다. 그런 장채열 시민운동가의 퇴장은 꼭 내가 퇴장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채열이 형장례는 ‘민주 시민사회장으로’으로 치룰 수 있었다. 
https://www.agor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7808 내가 장례 집행위원장을 맡고 싶다고 했다. 존경과 슬픔이 공존하는 장례식장에서 나는 울음을 꾸역 꾸역 참아냈다. 발인 후 화장장에서 폭풍처럼 터져버렸다. 주체할 수 없이 엉엉 울었다.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채열이 형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곳,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지에 안장했다. 49일 되는 날까지 집행위원장 일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술없이 잠을 잘 수 없었다. 최근까지 매일 막거리 한 병을 마셔야 잠을 이루는 못된 버릇까지 생겨버렸다. 

 

순천시민사회, 큰 별이 지다. - 순천광장신문

“나 태어나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 꽃피고 눈 내리니 어언 40년”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장채열 이사장이 11월 9일 새벽, 향년 62세로 별세했다.장채열 이사장은 1980년대 광주 5·18을 시작으로

www.agoranews.kr

 

2025년 겨울, 12월은 달려야 했다. 

12월 시작과 함께 겨울 달리기를 시작했다. 천천히 달렸다. 머리를 따숩게 하고, 긴바지를 입고, 런닝 전용 긴팔 셔츠도 사고, 목을 감싸는 버프도 샀다. 주로 밤에 뛰기 때문에 뛰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뛰기 시작하면 따듯해졌다. 겨울 뜨거운 땀은 노력같았다. 무려 173km나 뛰었다. 

2026년 하프 마라톤 결심 

달리기가 재밌어졌다. 달리기 용품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런닝화를 구입했다. 달리기용 시계도 구입했다. 대부분 당근을 이용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갈 결심을 했다. 달리기 예능을 꼭 챙겨보게되었다. 천천히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기 시작했고 2월 13일 첫 21Km를 뛰었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놀라웠다. 2월 25일 두번째 하프를 뛰었는데 18분을 단축했다. 

2026년 3월 29일 장흥 정남진 마라톤 대회 출전 

마라톤 대회에 신청한 것을 후회했었다. 달리기가 두려워졌다. 대회 일주일 전 달릴 코스를 미리 답사도 했다. 걱정은 더 많아졌다. 무엇을 입어야 하나, 무엇을 신어야 하나, 몇시에 도착해야 하나, 바지 안에 팬티를 입어야 하나, 배번표는 어디에 붙이나, 물은 가지고 뛰어야 하나, 핸드폰은 두고 뛰어야 하나? 마라톤 출전을 조심스럽게 공개하고 조언도 들을겸 facebook에 준비물 사진을 올렸다. 조심해라, 기록 욕심보다 완주 목표로 해라, 부상 조심해라, 믿기 어렵다, 놀랍다, 꼭지가 쓸리니 밴드를 준비해라 등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2026년 3월 29일 제20회 장흥 정남진 마라톤 대회 참가 준비물

순천에서 장흥까지 운전으로 1시간,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찰밥을 먹고 출발했다. 10시 출발인데 7시 40분에 도착하니 주차장 여유가 있었다. 날씨는 새봄이 찾아와 춥지 않았다. 무릅과 발목 테이핑을 무료로 해주는 곳이 있었다. 무릅을 칭칭 감았다. 

9시 50분 드디어 드어이 출발

5Km까지는 무난한 평지였다. 옆에서 사람들이 쭉쭉 치고나갔다. 속도를 내려는 마음을 꾹꾹 눌렀다. 5Km를 지나면서 조금씨 오르막 길이 형성되었다. 다행히 조곡동 철도 마을에서 죽도봉까지 언덕을 자주 뛰어다녔다. 언덕 달리기가 일상이어서인지 어려움이 없었다. 여기서 나보다 앞 선 사람들을 따라잡는 재미가 있었다. 나중에 들었다. 이 오르막이 힘들었다고, 나는 즐거웠다. 

제20회 장흥 정남진 마라톤 대회코스

프마라톤(21Km) 목표는 2시간 30분이었다. 전체적으로 목표보다 빨랐다. 심지어 어느 구간은 1Km를 5분 14초에도 뛰었다. 대회에 나온 흥분 때문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고, 재밌었다.  완주 시간 2시간 16분 13초.

그렇게 인생 첫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목표했던 기록보다 14분을 당겼다. 완주했다. 계속 뛰기로 마음 먹었다.  달리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욕심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작은 성공을 직접 경험하는 것 같다. 내가 주도하는 일이라 내 마음대로 어떻게, 얼마나, 언제, 어디서 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 같다.

2024년 5월 28일 여순사건진상조사보고서 작성 기획단 순천 방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사건은 항소심(2026년 3월 25일)에서도 잘 해결되지 못했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눈치보며 생존 투쟁을 하고있는 50대 중년의 삶에서 내가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달리기는 희망이다.
달릴 수 있는 한 맘대로 할 수 있다.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쉬고 싶으면 쉬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면 된다.  
더 달리고 싶은 꿈을 꾼다. 41K, 50K, 10K, 100M까지 2027년 트레일러닝 코스 어디에선가 새해 일출을 맞으며산 길을 걷다가 뛰다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