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인생 첫 하프 마라톤

동자꽃-김돌 2026. 4. 3. 18:17

2026년 3월 29일 오전 10:00 출발, 2시간 16분 13초 후 도착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 라인에 서면 두근 두근 거렸다. 화약총 소리가 '탕'하고 들리면 죽어라 달렸다. 응원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쭉 치고 나가는 친구를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한 번도 1등을 해본적이 없다. 운동회 달리기에서 3등안에 들면 공책을 상으로 받았고, 손등에 도장을 찍어줬다. 1등은 아니어도 운동회때 달리기는 항상 기다려지고 재미가 있었다. 

살면서 대학 때 데모하다가 도망가는 달리기 말고는 달일 일도 없고 달리는 것 자체를 잊고 살았다. 

2025년 8월 24일 달리기 시작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가 주도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생겼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무작정 뭐라도 해야 되는 상황이 생겼다. "한 번 뛰어 볼까?" 2025년 8월 24일 저녁 9시에 그냥 달렸다. 숨을 헐떡거리며 달린 거리가 4Km 30분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27일에는 6Km, 28에는 7Km를 뛰었다. 밤마다 뛰었다. 

2025년 10월부터는 월 100km 이상을 뛰었다. 뛰고 나면 땀이 나서 좋았고, 심박수가 170까지 올라 신기했다. 조금씩 거리가 늘어나서 즐거웠고, 동천을 뛰는 분들과 마주치면 동지(?)를 만난 것 같았다. 

2025년 11월은 달리기가 주춤했다. 

11월 9일 새벽에 장채열(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형이 향년 62세로 별세했다. 사실 나는 병상에 누운 형을 보고 온 후 별세 한 주 전부터 울면서 장례를 준비해왔다. 순천YMCA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시민운동 과정은 온통 채열이 형과 함께 했다. 조례저수지 호수공원화, 순천화상경마장반대운동, 주민자치와 마을 공동체 운동까지 함께 상의했고, 마음이 맞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는 형이 있었고, 형은 허드레 일을 시킬 후배가 있었다. 민주노동당으로 시의원 출마를 권유한 것도 형이였다. 시민운동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날카로워진다. 형은 나에게 대학때 싱그럽고 재미있던 석이 모습을 잃지 말라고 했다. 내가 만난 운동가 중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의 죽음은 내가 죽은 것과 같았다. 갑자기 벼량 끝에 떨어진 것 같았다. 밤마다 울면서 뛰었다. 뛰면서 울었다. 순천의 사회적 자산같은 장채열 시민운동가의 퇴장은 꼭 내가 퇴장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꿈꾸는 자치 일꾼 장채열 민주 시민사회장(https://www.agor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7808)’으로 치루었다. 내가 장례 집행위원장을 맡고 싶다고 했다. 존경과 슬픔이 공존하는 장례식장에서 나는 울음을 꾸역 꾸역 참아냈다. 발인 후 화장장에서 폭풍처럼 터져버렸다. 주체할 수 없이 엉엉 울었다.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채열이 형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곳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지에 안장했다. 49일 되는 날까지 집행위원장 일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술없이 잠을 잘 수 없었다. 최근까지 매일 막거리 한 병을 마셔야 잠을 이루는 못된 버릇까지 생겨버렸다. 

2025년 겨울, 12월은 달려야 했다. 

12월 시작과 함께 겨울 달리기를 시작했다. 천천히 달렸다. 머리를 따숩게 하고, 긴바지를 입고, 런닝 전용 긴팔 셔츠도 사고, 목을 감싸는 버프도 샀다. 주로 밤에 뛰기 때문에 뛰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뛰기 시작하면 따듯해졌다. 겨울 뜨거운 땀은 노력같았다. 무려 173km나 뛰었다. 

2026년 하프 마라톤 결심 

달리기가 재밌어졌다. 달리기 용품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런닝화를 구입했다. 달리기용 시계도 구입했다. 대부분 당근을 이용했다. 그리고 마라톤 대회에 나갈 결심을 했다. 달리기 예능을 꼭 챙겨보게되었다. 천천히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기 시작했고 2월 13일 첫 21Km를 뛰었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놀라웠다. 2월 25일 두번째 하프를 뛰었는데 18분을 단축했다. 

2026년 3월 29일 장흥 정남진 마라톤 대회 출전 

달리기가 두려워졌다. 마라톤 대회에 신청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대회 일주일 전 달릴 코스를 미리 답사도 했다. 걱정은 더 많아졌다. 무엇을 입어야 하나, 무엇을 신어야 하나, 몇시에 도착해야 하나, 바지 안에 팬티를 입어야 하나, 배번표는 어디에 붙이나, 물은 가지고 뛰어야 하나, 핸드폰은 두고 뛰어야 하나? 마라톤 출전을 조심스럽게 공개하고 조언도 들을겸 facebook에 준비물 사진을 올렸다. 조심해라, 기록 욕심보다 완주 목표로 해라, 부상 조심해라, 믿기 어렵다, 놀랍다, 꼭지가 쓸리니 밴드를 준비해라 등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2026년 3월 29일 제20회 장흥 정남진 마라톤 대회 참가 준비물

순천에서 장흥까지 1시간,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찰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서 출발했다. 휴게소에 들려 화장실에 다녀왔다. 10시 출발인데 7시 40분 도착하니 주차장 여유가 있었다. 날씨는 새봄이 찾아와 춥지 않았다. 광주에 있는 조선이공대스포츠재활학과 교수님과 학생들이 무릅과 발목 테이핑을 무료로 해주었다. 무릅을 칭칭 감았다. 

그리고 9시 50분 무렵 드디어 출발했다. 5Km까지는 무난한 도로 평지 대회에 참여해서 그런지 속도를 내려는 마음을 꾹꾹 눌렀다. 5Km를 지나면서 조금씨 오르막 길이 형성되었다. 다행히 조곡동 철모마을에서 죽도봉까지 언덕을 자주 뛰어다녀서 그런지 어려움이 없었다. 종료 후 들었는데 이 오르막이 힘들었다고 했지만 나는 즐거웠다. 

제20회 장흥 정남진 마라톤 대회코스

나의 하프마라톤(21Km) 목표는 2시간 30분 안에 들어오는 것이 목표였다. 생각보다 빨랐다. 심지어 어느 구간은 1Km를 5분 14초에도 뛰었다. 대회에 나온 흥분 때문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고, 재밌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하프 마라톤에서 완주했다.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목표했던 기록보다 14분을 앞당겼다. 그리고 나는 계속 뛰기로 했다. 뛰면서 생각이 정리가 되고, 욕심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작은 성공을 직접 경험하는 것 같다. 내가 주도하는 일이라 내 마음대로 어떻게, 얼마나, 언제, 어디서 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 같다. 위로 아래로 눈치보며 살아가고 있는 50대 중년의 삶에 희망처럼 다가온 달리기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2027년 트레일러닝 코스 어디에선가 2027년 새해 일출을 맞이하며 산 길을 걷다가 뛰다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